화려한 로레알의 추악한 진실
'아름다움의 상징' 로레알의 베일 속 두 얼굴
환경친화 내세우나 유해물질 사용 여전
과장 광고, 제왕적 경영 방식도 비판받아
100년 전에 설립된 프랑스 기업 로레알은 요즘 분위기가 약간 뒤숭숭하다. 우선 경제위기로 인해 과거에 비해 매출이 신통치 않아서다. 또한 사진작가 프랑수아 마리 바니에에게 9억9300만 유로를 기부한 로레알의 사주 릴리안 베탕쿠르에 대해 그의 딸이 금치산 선고를 신청했다. 어머니가 심신 상태가 정상이 아닌 가운데 기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딸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네슬레도 로레알을 계속 위협하고 있다. 자,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비밀스러운 거대 기업 로레알 속으로 들어가보자.
“좌파 시대든 우파 시대든 독재 권력 아래에서 화장품이 금지되거나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니 충격적입니다. 소련의 화장법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18년 동안 로레알 최고경영자를 맡으며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린지 오언존스가 했던 말이다. 이는 크림이나 샴푸를 파는 일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OJ(오언존스를 지칭하는 유명한 말)는 아주 일찌감치 중국 시장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중국 여성들이 마오의 붉은 책 대신 붉은색 립스틱을 가지고 다니게 될 거라고 했죠.” 로레알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여성의 말이다.
그의 이런 장담은 얼마 후 실현되었다. 1997년 베이징에서 오언존스가 중국어로 ‘전 소중하니까요’라고 적힌 거대한 광고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것이다. 또한 로레알은 지난해 세계 화장품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이집트, 카자흐스탄, 파키스탄에 지사를 열어 현재 130개국에 진출한 상태며, 자사의 브랜드(로레알 파리)는 물론 그동안 인수한 프랑스 브랜드(가르니에, 돕, 믹사, 비시, 라로슈포제, 비오템, 랑콤, 카샤렐, 이브생로랑 보테…)와 외국 브랜드(메이블린, 키엘, 슈에무라, 헬레나 루빈스타인, 랠프 로렌, 조르지오 아르마니, 미니너스, 콜로라마, 소프트신·카슨…)를 판매하고 있다.
2008년에 로레알은 20년 동안 유지하던 그 유명한 ‘두 자리 성장률’을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순이익만 해도 20억 유로를 거둬들였다. 오언존스가 최고경영자직을 맡을 당시 로레알의 매출액은 37억 유로에서 145억 유로로 급등했고 주식 시가총액도 15억 유로에서 500억 유로로 늘어났다. 2006년부터 오언존스는 로레알의 회장을, 장폴 아공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소비 미덕과 함께 고속 성장
잠시 로레알의 역사를 살펴보자. 파리 출신의 화학자 유진 슈엘러는 1907년에 새로운 염색법을 개발해 회사 L’Auréale(로레알)을 창설했고 2년 후 회사명 철자를 ‘L’Or?al’로 바꾸었다. 현재 86세인 릴리안 베탕쿠르는 아버지 슈엘러가 남긴 유산 덕에 세계 최고 갑부 여성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가 가진 재산액은 134억 달러로 추정된다. 로레알은 그룹이 프랑스와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수록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예로 로레알의 경영진 이름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오언존스는 오랫동안 파리 증시 40개 상장 기업(CAC 40)의 최고경영자 중 최고의 수입을 올린 이로 남아 있었으며(기본 연봉만 해도 720만 유로까지), 2007년 잡지 <챌린지>의 집계를 보면 장폴 아공은 유럽에서 최고의 수입을 자랑하는 경영자였다(아공은 올해 1300만 유로를 받았는데 이 중 400만 유로는 연봉으로, 900만 유로는 스톡옵션으로 받았다). 4월 주주총회에서 장폴 아공은 유럽의 공장 세 곳을 폐쇄하기로 했다며 2009년도 스톡옵션은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박수갈채 속에서 오언존스 회장은 최고경영자 아공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어떤 법도 개인의 사적인 판단을 대신할 수 없을 겁니다.”
로레알 본사는 파리 외곽 클뤼시에 있다. 유진 슈엘러가 1928년에 인수했다가 2년 뒤 미국 기업 프록터앤드갬블에 다시 넘긴 기업 ‘몽사봉’(Monsavon) 사무실이 서 있던 곳에 지어진 갈색 돌 빌딩이 바로 로레알 본사 건물이다. 로레알은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로레알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미래의 웰빙을 약속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더구나 웰빙은 소비사회의 성장으로 꾸준히 그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로레알의 시각으로 보면 여성해방은 헤어스프레이 얼네트와 탈취제 프린틸의 판매 증진을 가져온다.
상당히 가족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프랑수아 달(2005년에 사망)은 1957년에서 1985년까지 로레알을 이끌며 자본주의는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때만 정당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였다. 그는 일을 하면서 가치를 창조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늘 품었다.
이익 위해선 허위·과장 광고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해 자신만만해진 로레알은 진지하고 객관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과학의 권위를 자사의 이미지에 활용하고 싶어하게 되었다. 로레알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연구소들이 일종의 내부 견제 세력이고 마케팅에 미친 사람들과 지속적이고 효율적으로 힘겨루기를 하며 꿋꿋하게 윤리를 실천해가는 곳이라며 존경을 표했다. 그런데 이들 중 한 명은 날카롭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기초 연구가 마케팅 문구에 많은 기여를 한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죠.” 로레알 제품 광고들을 보면 주름 하나 없는 비현실적인 모델들이 등장하고 ‘좀 있어 보이는’ 도표, 숫자, 그래프가 동원된다. 로레알은 영국, 미국, 헝가리에서 광고 감시 기구 혹은 소비자 단체들과 맞부딪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로레알은 3월에 헝가리에서 허위 광고로 50만 유로 벌금형을 받은 전례도 있다. 그나마 프랑스가 로레알에 관대한 편이다.
화장품 대기업 로레알은 현대과학에 기여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예산 1억8천만 유로를 투입한 프랑스 최초 민간 자선 기구 베탕쿠르·슈엘러 재단과 같은 로레알의 재단은 여러 연구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로레알은 매년 유네스코와 함께하는 ‘여성과 과학을 위한’ 프로그램에 따라 전세계 여성 연구원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그리고 선정된 여성 연구원들의 얼굴이 신문과 잡지 광고 면들을 가득 채운다. 오언존스는 여성 연구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성 연구원들은 알 수 없지만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미래이며 더 나은 세상을 약속해주는 존재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환경이 하나같이 어둡고 회의적인 상황에서 여성 연구원들은 그만큼 많은 위안을 주죠.” 여기서 잠시 2009년에 테일러넬슨소프레 연구소가 의뢰를 받아 10개국을 대상으로 과학의 인식에 대해 실시한 앙케트 조사를 살펴보자. 이 조사를 통해 과학에 대한 문제가 역설적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과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과학의 잠재적인 힘을 이해하게 해줄 정보가 없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이런 인식은 힘을 잃는다.” 이렇게 되면 과학적인 주장이 언젠가는 평판을 잃게 될지도 모르지 않을까?
동물실험으로 악명 얻어
로레알은 여론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잘 알고 있다. 1975년 인터뷰에서 프랑수아 달은 민간 기업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의무 중에서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이 해롭지 않음을 보장할 의무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뒤 로레알은 동물실험으로 악명이 높은 기업으로 찍히며 제품 보이콧 운동에 부닥쳤다. 로레알 역사상 가장 진땀나는 위기 중 하나가 찾아온 것이었다. 2003년에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로레알이 프랑스를 부추겨 화장품을 위한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유럽연합 지침 채택을 늦추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 지침은 2009년 3월부터 발효 중이다. 현재 로레알은 인공 피부 개발에 나서며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나 동물실험이 의무 조항인 중국 같은 국가들에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로레알은 또 다른 새로운 인식 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처지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연구가들은 화장품에 들어 있는 몇 가지 화학물질, 특히 파라벤이 암을 유발하거나 내분비 체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발표에 사람들은 바이오 제품으로 대거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바이오 제품은 화장품 분야의 새로운 엘도라도로 떠오르게 되었다. 로레알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 2006년에 영국의 ‘보디숍’과 프랑스 바이오 브랜드 ‘사노플로르’를 인수했다. 특히 보디숍은 ‘윤리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이미지에 힘입어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로레알은 ‘지속 가능한 개발’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인 홍보를 하고 있으며 인도 뭄바이 인근 푸네(Pune)에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지렁이와 태양열판을 이용하는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화학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스위스의 식품 다국적기업 네슬레를 주주로 두고 있는 로레알 같은 기업에 그린워싱(기업들이 환경친화적 이미지를 갖기 위해 하는 행동)은 곧바로 한계를 드러낸다. 더구나 페터 브라베크 네슬레 대표는 “유전자 변형이 바이오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고 확신한다.
<화장품의 진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독일 기자 리타 스티엔스는 이렇게 말한다. “로레알 파리는 끝없이 새로운 제품이라는 것으로 시장을 채우지만 제가 보기에는 늘 똑같은 제품입니다. 실리콘, 저렴한 미네랄 오일, 아크릴레이트, 에틸렌디아민사초산(EDTA)으로 이루어진 제품이죠. 환경을 파괴하는 존재고요.” 리타 스티엔스 기자는 건강과 환경에 위험해 보이는 화장품 성분이 많다고 한다.
내용 변함없는 새 상품 쏟아내
더구나 로레알 노조도 자사 화장품을 만지고 다룰 때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노조는 지난 3월 안전한 화장품을 위한 새 유럽 규정이 통과하기 전에 염색 제품(로레알은 여러 염색 제품 계열을 판매하고 있다)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여러 연구를 보면 미용실 근무자들은 습진, 알레르기, 혹은 천식 같은 문제를 호소한다고 한다. 미용실 근무자들은 경영진에게 건강을 해치지 않는 좀더 안전한 제품을 서둘러 연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밖에 우려되는 문제가 또 있다. 로레알은 제왕적인 성격의 강경한 경영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오언존스 회장은 로레알에 ‘OJ’ 왕국을 세웠다. 당연히 임원진과 노동자들은 큰 압력을 받고 있다. 로레알은 전세계에 40곳의 공장을 두고 있는데 이 중 20곳은 유럽에 있다. 2월에 장폴 아공 최고 경영자는 채용을 동결한다고 발표해 눈총을 받았다. “2004~2007년에 프랑스 공장 12곳은 직원 12%가 해고되었지만 수익률은 14% 상승했습니다.”
로레알 유럽위원회의 프랑스민주노동총연맹(CFDT) 쪽 대표 필리프 보댕의 말이다. 이런 강경 정책에 스트레스는 나날이 높아진다. 경영진은 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경한 경영정책을 펴는 거라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2008년 순이익도 여전히 상당하고(20억 유로) 주주들에게 가는 배당금도 상승해 무려 8억6200만 유로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에 비해 1900만 유로 오른 금액이다. 2007년 당시 순이익은 26억 유로였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500명이, 보디숍에서는 275명이 해고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웨일스, 모나코, 스페인에 있는 공장 세 곳을 2011년까지 폐쇄한다고 한다.
2008년 2월, 더 이상 회사 이익을 위해 소모품으로 이용당할 수 없다며 로레알에 근무하는 프랑스 직원 1만2천 명이 파업을 했다. 이들은 전반적인 봉급 인상을 다시 요구했다. 2004년에 전체 봉급 인상 요구가 있긴 했지만 무산되고 대신 개별적인 봉급 인상으로 사태가 마무리된 적이 있다. “경영진이 기업의 이미지가 타격을 입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저희가 이겼습니다. 그러나 2009년에 봉급 인상률은 겨우 1.5%에 그치고 있습니다.” 필리프 보댕 대표가 말했다.
한편 배당 정책(2002년부터 배당금은 모두 두 배로 늘었다)을 지속하고 싶어하던 경영진은 4월에 결의안을 주주총회에 부쳤다. 변함없이 함께하는 주주들이 2012년부터 배당금 10%를 인상해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결의안이었다. ‘경기가 불안정한 시기에는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주주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현명한 처사다.’ 오언존스가 2008년 보고서에 쓴 글이다. 그러나 로레알 최고 노조인 간부직 총연맹(CFE-CGC)의 조르주 리아로카피 위원은 이런 처사 뒤에는 다른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로레알이 자사 주식을 재매입해 처분하는 정책은 오히려 주요 주주들, 즉 베탕쿠르 가문의 힘과 네슬레 그룹의 지배권을 키워주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는 주주는 제대로 대우해주고 싶지만 위험을 전혀 감수하지 않는 주주가 그냥 앉아서 이익을 얻도록 할 수는 없죠.” 리아로카피가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30년간 로레알은 매년 9억4100만 유로와 13억 유로 사이의 금액을 이런 자사주 관련 정책에 투입했고 약 5500만 주를 처분하고 있다.
모나 숄레 Mona Chollet 著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월호 발췌 / 한겨레 2009.06.12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