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토리노 : 그가 남긴 유산, 그 의미.
네이버 평점 : 9.18
Noin 평점 : ★★★★
아마 영화 감독을 꿈꾸는 영화 배우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롤 모델을 뽑으라면 1위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닐까 합니다. 이분만큼 영화배우로서나 감독으로서나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죠. 스타로서의 삶과 연출력을 인정받는 감독으로서의 삶을 다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엄친아같은 경우인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불과 얼마 전에 '하이에프터'라는 신작을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제가 감상글을 남길 영화는 그가 주연을 겸하기도 했던 '그랜토리노'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년의 남성과 젊은 청소년 혹은 청년기의 남성의 우정을 다룬 영화라면 숀 코너리가 주연한 '파인딩 포레스터'를 기억하는 편입니다. 본지 워낙 오래되나서 지금도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처음 봤을 당시엔 나름 감동을 먹기도 했었죠. 명 감독 구스 반 산트가 연출한 영화였으니 다시 봐도 감동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노년의 남성과 젊은 남성의 우정을 그렸다는 점, 특히 둘의 관계를 통한 성장영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이 두 영화는 비슷한 면을 분명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영화는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파인딩 포레스터'의 경우 이 영화는 지극히 캐릭터 개인에 균등하게 감성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주요한 요소는 두 인물 사이의 순수한 우정입니다.
반면, '그랜 토리노'의 경우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역한 월트에 더 방점을 찍고 있으며, 둘 사이의 순수한 우정과 같은 감상적인 요소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월트가 타오와 우정의 관계를 맺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 이 둘의 우정관계는 개인적은 관점보다는 오히려 사회적인 관점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게 더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 상징은 무엇일까요?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현 미국 사회 구성원들의 특정 집단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월트의 경우 20세기 중후반을 주 무대로 삼았던, 전쟁 경험이 있는 현 미국 노년층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지식하고, 인종차별적이며, 때론 폭력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볼 때 KKK단을 떠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의와 배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부분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윤리적 관점을 중요시 하는 것 역시 이 세대의 주요한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월트의 자식들을 비롯한 미국 청장년층의 모습은 월트의 모습과 대조적입니다. 개인주의적이고 산업 자본주의 정신에 투철하며, 가족애를 크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인 월트를 논하는 두 형제의 모습이나 물건을 떨어뜨린 할머니에게 도움은 커녕 짓궂은 장난을 치는 미국 청년들의 모습, 월트를 노인 센터로 보내려고 안달이 나 있는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월트를 백인 노년 인물로 두고 타오를 아시아인 청소년으로 두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어디까지나 인종차별적인 시선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눈에 아시아인의 위치란 '미국인과 동등한'이 아닌 '미국인의 도움이 필요한', '미국인보다 열등한'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굳이 이 영화 속에 들어 있는 상징체계에서 백인과 아시아인 사이의 인종차별주의를 밝혀내어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스트우드는 더 진중하고 진심어린 말을 이 영화에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월트는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말과 태도를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오히려 이와 반대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식들보다 이 아시아인들에게서 큰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에게 있어 자식들을 비롯한 미국의 청년들은 외계인과 같다고 할 정도로 불가해하고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관객들은 극 초반에 월트에게서 일정한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고지식하고 괘팍하며 고집이 세 스스로 외톨이가 된 외로운 노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어 갈수록 관객들은 그가 사실 그런 인물이 아니었음을 깨달아 가게 됩니다. 표현이 서툴지만 속정이 깊은 한 노년의 남자의 모습을 말입니다. 이 남자는 스스로 외톨이가 된 것이 아니라 외로이 남겨진 사람입니다. 스스로 사회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쓸쓸히 남겨졌다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런 그가 아내마저 여의었을 때, 그가 느끼는 외로움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을 겁니다. 그런 그에게 아시아인 가족과의 인연이 생겨납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바로 '그랜토리노'라는 차입니다. 극중에서 이 차가 지니는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이 차는 월트가 지닌 소유물 중에서 가장 값진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가장 비싼 재산목록으로의 의미 이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20세기를 주 무대로 삼았던 세대가 다음 세대로 남기는 유산입니다. 실제로 이 차는 월트가 죽고 난 다음 그가 남기는 유산 목록에 들어가 있는데요.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 차가 사실 극중에서 모든 인물들이 원하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몽족 갱들은 갱단 가입의식으로 이 차를 훔쳐 오는 걸 원했고, 월트의 지인들 역시 이 차를 탐했으며, 유언장의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월트의 가족들 역시 이 유산을 원했습니다. 전 세대가 후 세대에 남겨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 비록 그저 그런 차 한 대가 아닌, 전 시대에 만들어져 오로지 그 시대를 살았던 전 시대의 사람들이 후세에 남겨줄 수 있는 희귀한 가치를 지닌 유산인 겁니다. 월트는 이 유산을 자신의 가족들이나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 바로 타오에게 줍니다. 조건은 이 차를 절대 개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는 전 시대의 유산을(혹은 그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즉, 이런면에서 볼 때 타오라고 하는 인물은 전세대와 이질감을 형성하는 후세대가 아닌, 그들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후세대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대략 감이 잡힙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보자면 미국을 미국답게 하는 것에 관해 그는 인종이나 DNA보다는 정신과 가치관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굳이 미국이 아니라 사회 집단으로만 보아도 그렇죠. 선세대에서 후세대로 우리라고 할 수 있는 공통적이고 인간적인 정신이 공유될 때에야 사실 우린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21세기의 사람들과 20세기의 사람들은 이스트우드의 영화 속에선 철저한 타종족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어디까지나 미국영웅주의를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전 개인적으론 반대입니다. 월터의 희생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만일 이 영화가 미국영웅주의 영화였다면 이스트우드는 화려하진 않더라고 유혈이 낭자한 복수극을 찍었을 겁니다. 하지만 월트는 무장을 하지 않고 적진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몽족 갱들로부터 총을 난사당하고 죽고 말죠.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는 사실 역시 깨달은 상태였죠.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몽족 갱들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앞서 미국의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이질성을 얘기했는데요. 몽족 갱들은 이를 극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 미국 젊은 세대와 정신적으로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들은 동시에 혈통적으로는 미국인들에게 철저히 배타적인 존재입니다. 월트는 몽족갱들로부터 토아를 지키려고 합니다. 토아는 혈통적으로는 미국인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월트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죠. 결국 인종이라는 차원을 벗어나 전 세대가 후세대를 위협하는 존재들로부터 가치관을 공유하는 후세대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다는 것이 월트의 죽음의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몽족 갱들의 민족성은 사실 그만큼 미국의 젊은 세대와 전 세대의 이질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만 보아도 충분합니다. 그만큼 같은 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이죠.
미국인과 아시아인이라는 대립을 단순히 민족이라는 관점이 아닌 가치관과 정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실 이 영화는 단순히 인종차별주의 영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정체성, 혹은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적인 가치관과 정체성에 대한 이스트우드의 진중한 사유에 집중하며 이 영화를 논하는 게 옳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또한 이 영화를 본 우리들 역시 우리 사회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영화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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