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한국 사회와 대중문화 騎虎之勢

카테고리

비평공간 (45)
대중문화 (14)
철학 (7)
인문 (1)
정치 (5)
사회 (7)
고찰 (1)
기타 (10)
Total
Today
Yesterday



죽음이라는 것. 참으로 아리송한 개념임에 틀림없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의 정의를 도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의 정의(定義)는 정의내린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천차만별이며, 정작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다면, 우리는 죽어야 한다. 그래서 죽음은 신비스럽다. 때론 두렵기도 하다. 아마,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아무도 죽음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들 자신이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므로.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건 우리 자신들의 삶이다. 그리고 그 삶을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의미도 자의적으로나마 규정할 수 있다. 삶을 통하여 본 죽음. 우리가 죽음에 관하여 판단할 수 있는 범위는 여기까지이다. 즉, 죽음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삶의 종착점으로서의 죽음, 그것이다.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죽음에 관한 일반적 양태는 다음과 같이 축약된다. <A = 지혜로운 삶을 지향하며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 B = 자연을 가까이하고 그의 도리에 따르는 삶을 지향하며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 C = 생존 그 자체에 매달리는 삶을 살다가 맞이하는 죽음.> 비록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각기 다르지만, 이러한 죽음 양태들의 근본적 의미는 앞서 말한 바와 같다. 모두 "삶의 끝"으로서 맞이하는 죽음의 유형들인 것이다. 단지, 그 끝을 향해 어떻게 내달리고자 하는지, 또는 어떻게 내달렸는지에 대한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이제, 논점을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어떻게 하면 훌륭한, 또는 후회 없는 삶의 끝을 맞이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옮기고자 한다. 이 문장을 좀 더 명료하게 하면, “어떻게 훌륭한 삶,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로 압축된다. 이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한 사람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처럼, 후회 없는 삶을 살고 담담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기에 앞서, 궁극적으로 얻어가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란 정확히 어떤 것일까? 우선, “후회 없는 삶”이라는 말 그 자체에 접근해 보자. 후회 없는 삶. 이것은 그만큼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잘 살아왔으므로 미련 없이 삶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또한 이 말은, 자신이 자신의 삶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도 함의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면, C 양태는 일단, 후회 없는 삶의 의미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판명된다. 그만큼 자신의 삶을 충분히 영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러한 죽음을 곁에서 마주할때, 이별의 아쉬움 보다는 비통한 감정이 먼저 고개를 들게된다. 

그러므로 필자의 생각은 이로써 보다 명확해진다. 그 생각은 타자에 의해 사자(死者)가 후회 없는 삶을 마친 것으로 평가되는 죽음, 그것에 기인한다. 우리는 삶의 종착역인 죽음으로 그냥 내달리지는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할까? 이 고민을 끝없이 단 채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에 충실히 임하는 삶을 산 사람이 결국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그 “무엇”을 "나와 타인들 모두가 진정으로 경애(敬愛)하는 행위"로 규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자신이 죽음에 임했을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이 슬픔 그 자체의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우리를 위해 살다 간 사자의 행적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 그 아쉬움 때문에 사자의 죽음을 슬퍼하도록 해야 한다. 그 아쉬움이 곧, 사자의 삶이 후회 없는 삶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징표가 되는 것이다.

내세가 존재하는 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다. 하지만 내세의 유무를 떠나서도 영속성은 존재한다. 사자의 이름, 그리고 그 사람의 행적. 이것이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아쉬움과 그리움에 의한 기억으로 이어져,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A 양태처럼, 지혜를 탐구하는 철인(哲人)이 되어 죽음을 맞이해도 좋고, B 양태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그와 함께하는 죽음을 지향해도 좋다. 단지, 그와 같은 삶의 태도의 차이는 당사자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를 아쉬움으로써 애도하는 주변인들의 범위를 결정해줄 뿐이다. A, B의 경우는 각각 A, B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 사자(死者)의 기억을 영원히 지속시켜 주는 것이다. 당연히, 아예 주변인들의 뇌리에 남지 않는 죽음 보다는 낫다. 또한, 나쁜 기억으로 주변인들의 뇌리에 남는 죽음보다도 낫다. 물론,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바로 이 두 개의 후자를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기억으로써 주변인들의 뇌리에 남을 수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규모와 방법의 제약을 떠나서- 나와 타인들 모두가 진정으로 경애(敬愛)하는 행위를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삶이 주변인들의 기억으로 인한,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죽음의 궁극적 목표이다.

필자는 가치 있는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닌 끝"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즉 육체는 사라졌지만 다른 사람들이 기념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끝맺지 못하는 죽음, 바로 그 죽음을 가치 있는 것으로 규정하려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정의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를 좋은 의미의 결과로 달성하기 위해, 이 사회에서 자신과 관계맺는 타인들을 위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칸트는 그의 저서, 역사철학에서 “나는 단지 나아지기 위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이 타자를 위해 살아가며 죽음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나아지기 위해” 한다. 나의 죽음은 끝이 아니며, 영원히 주변 사람들의 뇌리에 좋은 의미로서 기억되기 위해서. 그 범위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말이다.



글쓴이 : 서성경


무단 불펌을 금지합니다. 퍼가려 하신다면, 꼭 출처를 간단히 댓글로 남겨주세요.
Posted by 騎虎之勢
, |




  하이데거는「존재와 시간」을 통해 기존의 널리 이해된 형이상학, 존재자를 존재로서 즉, 표상으로서 사유하고 탐구하는 형이상학을 넘어서기 위한 사유 -새로운 형이상학-를 시도하였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여기에 결정적으로 걸려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형이상학이 자신의 밑바탕에 계속 등을 돌린 채로 남아있어 인간에 대한 존재의 관련이 이 관련자체의 본질에 의하여 밝혀 지기를 - 여기에서의 밝혀짐이 인간으로 하여금 존재에 귀를 기울이게 해준다 - 거부하는가 하는 것이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10절)

“.....그러나 형이상학은 존재 자체를 Das Sein vorgestellt 언어에로 끌고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존재를 존재 자신의 진리에 있어 사유하고 있지 않으며, 이 진리를 비은폐성 aletheia 으로, 그리고 이 비은폐성을 그 본질에 있어 사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같은 책, 11절)

 


  형이상학이란 ‘존재자로서의 존재자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형이상학은 존재자에 대한 로고스(발언)을 그 내용으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Metaphysica>> 이래로, 존재론 Ontologie 이라는 이름은 형이상학의 본질적 특징일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형이상학은 존재자로서의 존재자 영역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즉, 형이상학의 표상은 존재자로서의 존재자에 있어 통용되는 것이다. 그러한 존재자의 존재자성, 본질, ονσια는 그 존재자 자체의 열려밝혀진 진리 aletheia 에 있어 두 가지 표상을 갖는데, 하나는 존재자 자체의 전체를 존재자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에 있어서 표상 (유적표상) 하고, 다른 하나는 존재자 그 자체의 전체를 최고의, 따라서 신적인 존재자의 의미로 표상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러한 이중의 형태의 근거가 형이상학 자신에 있어서는 닫혀 있는, 다시 말해 설명되거나 사유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형이상학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인 까닭에 그 자신의 본질상 존재의 경험으로부터는 제외되고 있는 셈이다. 형이상학이 존재자를 언제나 존재자로서 이미 이 존재자에서부터 드러나 보여진 그것 안에서만 표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형이상학은......이미 스스로를 숨겨버린 그것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같은 책, 20절)



  그러나 하이데거에 있어 기존의 형이상학은 통째로 부정해야할 그 무엇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토대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 그 위에 한 번도 탐험되지 못한 존재자의 존재로서의 사태, 즉 존재의 진리에 대한 사유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는 이 토대를 ‘기초존재론’ Fundamentalontologie 이라 명명했다.


 “거기에서부터 다른 모든 존재론이 비로소 발원할 수 있는 기초존재론은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론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존재와 시간 13절)


 

  그에 의하면 형이상학에서 1) 세계 관련이 있는 것은 존재자 자체이며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2) 모든 태도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존재자 자체이며,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3) 탐구의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존재자 자체이며 그 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했을 때 하이데거는 이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말해진 것이 사실은, 기존의 형이상학적 연구에서 외면되어진 것, 알 수도 없고, 인식할 숙도 없기에, 오히려 없는 것으로 여겨져 온 것, 즉 ‘무’ Nichts 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우리가 무를 이러저러한 것 ist 로 정의 내리는 것은 자체 모순이다. 무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어떤 존재적 본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논리학의 사유인데, 이것은 형이상학에 와서 문제가 된다. 그 ‘무’ 란 형이상학적 탐구에서 실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탐구, 즉 “존재자를 그 자체 그리고 전체에 있어 파악할 수 있게끔 다시 소급해 잡기 위해 존재자를 넘어서는 것”이다.


  하이데거 사유의 가장 커다란 의의는 서구적 대상 인식, 주체와 대상의 분리라는 데카르트적 인식에 대하여 세계를 세계로서, 인간을 그 세계를 이루는 무수한 관계들의 총체로서 파악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서양 근대 합리주의적 전통의 (근대적 의미에서) 설립자인 데카르트적 사고 방식은 인간과 인간의 삶을 인간의 의식에서 따로 분리해 내고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만 간주한다. 칸트적 작업은 인간 의식과 사유의 형식에 대한 내적 매커니즘을 세부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로) 그러한 단절 - 주체와 객체의 이원적 대립 -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이데거에게 인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세계 속에서 이루고 있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관계들의 총체이다. 즉, 인간은 이제 독립적이고 세계에 대해 독립적인 어떤 존재가 아니라, 세계-속의-존재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삶을 삶으로서 인간을 이러한 삶의 총체로서 파악하는 것. 하이데거는 ‘무’를 ‘존재로서 헌성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울러 “존재 없이는 모든 존재자가 다 무존재성 속에 남아있는 것, 그리고 이 존재의 알수 없는, 아직 전개되지 않은 본질이 우리에게 본질적인 불안 속에서 무를 보내고 있는 것”(보탬말, 45-46절)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했을 때 이 ‘무’ -기존의 형이상학에서 배재되어 왔던 존재 자체에 대한 탐구 - 라는 개념 또한 현-존재 Da-sein, 즉 인간의 실존 Extentia 과 연관지어 이해되어야 한다.
‘없음’이란 실은 없다고 하는 속성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무엇에 대한 없음’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다시 말해 하이데거 사유의 핵심, 즉 무로서 표상한 존재 자체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형이상학의 구상, 기존의 형이상학에서 연구되지 못한 존재자체에 대한 탐구를 우리는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의 전체성 Totality 속에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무’라고 하는 것이 항상 무엇에 대한 ‘무’라면, 반대로 인간이 근원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그러한 상태, ‘없음’의 상태에서 ‘있음’의 상태로의 미끌어짐(하이데거식 용어로 표현하자면)이 아닐까?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적 사상과 더불어 적어도 그 만큼의 의의를 지닌 사유가 아닌가?


  하이데거는 ‘때때로 드러나는’ 이러한 불안, ‘무’에 대한 불안, 즉 존재 자체에 대한 불인식성에서 오는 인간의 근본적 불안이 이와 같은 탐구의 원동력임을 밝히고 있다. 즉 ‘없음/무/표상’가 ‘있음/유/본질’의 결핍임과 동시에 그러한 결핍을 극복할 수 있는 본질적인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동력(혹은 불안)은 오직 인간, 현-존재 Da-sein 만이 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이러한 존재자는 존재의 열려있음에로 나가 끝까지 견뎌 냄으로써 그 열려있음 속에 서 있는다. 이러한 견딤이 곧 ‘염려’이다. 현존재의 탈자적인 본질은 염려에서 시작되며, 염려는 오직 염려의 탈자적 본질에서만 충분하게 경험된다.



“...이러한 무존재성 또한 존재의 진리에 존재가 결코 존재자 없이는 현성할 수 없음이, 존재자가 결코 존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이 속한다면, 존재 이탈자로서 다시금 아무것도 아닌 무가 아니다.” (같은 책, 46절)


 “오직 무가 근원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근거위에서만 인간의 현-존재가 존재자에 접근할 수 있으며 존재자에 관여할 수 있다. ” (35절)


 “현-존재란 무 속으로 들어가서 in das Nichts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한다.” (35절)



  그렇다면, 그러한 존재의 열려 밝혀진 진리 aletheia 는 과연 무엇인가? 존재 Das Sein 라는 개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이미 어떤 사태나 존재 이전에, 선험적으로 a priori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인식/파악/이해 하고자 할 때 이미 그에 앞서 주어져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 Das Sein 는 존재자에 대한 탐구 속에서는 결코 있는 그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말해질 수도 없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하이데거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현존재에 대한 분석, 현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분석론을 제시한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계속된 문제의식 속에서, 그러한 형이상학적 물음들이 지칭하는 대상성의 문제를 넘어, 그러한 물음들에 있어 요구되는 보다 근원적인 방법론으로서의 현존재이다. 그리하여 여기에 시간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가 현존재라고 이름 짓는 그 존재자의 존재의 의미로서 시간성이 제시될 것이다. 이러한 제시는 잠정적으로 드러내 보인 현존재의 구조들을 시간성의 양태로 반복하여 해석함으로써 자신이 참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존재와 시간」5절)



  그런데 이렇게 시간성에 현존재의 의미를 포개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존재 일반의 의미(전체에서 그 자체에서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우리는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시간성이란 하나의 토대이자 디딤돌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존재’는 「존재와 시간」에서 ‘시간’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존재의 진리에 대한 앞선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존재의 진리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그것 Das Wesende des Seins 으로서 존재 자신이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17절)



  앞서 ‘존재’를 존재자 이전에 미리 제시되어 있는 본질적인 무엇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은 그러한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것, 존재의 진리를 지시하는 것, 비은폐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는 기존 형이상학에서의 시간개념이 한 번도 사유하지 못한 것일뿐더러 결코 사유될 수도 없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하여「존재와 시간」은, 존재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나란히 존재자에 앞서는 존재의 근원적인 전제, 선험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전제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gothrough

Posted by 騎虎之勢
, |




할복자살에서의 죽음의 미학(美學)

 
  자살이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할복(割腹)식 자살은 일본만의 독특한 자살 방식이다. 게다가 가이샤쿠(介錯 : 할복하는 사람의 목을 침, 또는 그 사람)라는 진귀한 자살 방조의 풍습도 일본에만 있다. 보통, 자살은 남의 눈을 피하여 혼자서 하는 것이지만, 일본의 할복은 공개되어 행해지는 것이 특색이다. 할복은 "배를 가르는 것"이지 "배를 찌르는 것"이 아니다.

  일본 무사의 할복은 어저면 전세계의 남녀모소를 불문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할복의 독특함은, 일본도(허리에 차는 호신용의 작은 칼이나 단도)로 찌른 다음에 옆으로 절단해 가는 방법으로, 이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할복은 반 강제로 행해지는 일도 있어서 가이샤쿠라는 협박 시스템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르며, 잘못한 할복에서 오는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수단이었다고도 생각된다. 또는 할복의 장면이 실수한 할복으로 더럽혀지는 것을 방지할 의도에서, 할복자의 목을 치는 방조(傍助)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실수한 할복 자살자가 고통 때문에 뒹굴며 괴로워하는 광경은 분명코 아름다운 장면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할복자살은 아름다운 죽음이 아니면 안되고, 무사들은 정신적 훈련에 의하여 오늘도 죽고 내일도 죽고 매일 죽음으로 이 죽음의 미학 속에서 생사를 초월하려고 하였으리라.

  무사들의 할복자살이란 "자르기 지향" 문화의 상징적 의식이기도 하다. 불명예스러운 자신을 잘라버림으로써 다른 사람의 명예를 살리고자 하는 식의 자살이었다. 즉, 개인을 잘라버림으로써 남은 집단원 전원을 미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근래 할복자살에 관한 예를 들어 본다면, 종전 직후 요요기 연병장(현재 메이지 신궁의 외원(外苑))에서 다이토(大東) 학원의 원장 가게야마 쇼지(影山正治)의 문하생인 가게야마 쇼헤이(影山壓平 : 1886∼1945) 이하 14명이 할복자살하여 종전에 항의했다.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三島有紀夫 : 1925∼1970 전후의 극작가, 소설가)는 사무라이(무사)식 할복자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일본도를 사랑했고, 무사도를 사랑했으며, 검도를 사랑했다. 그의 소설 『검(劍)』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11월 25일, 도쿄 이치가야의 자위대 동부 방면 총감부로 그의 사병 "다테노카이(楯の會: 천화 옹호 모임)"의 멤버 4명을 거느리고 난입했다. 발코니에서 연설한 뒤,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하고 안쪽에 있는 총감실에서 자결했다. 그의 작품 『분마(奔馬)』의 마지막 줄은 그 행위를 예언한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주관중, 『자르기 지향의 일본인』(서울: 21세기북스, 1993), pp. 5∼6.  
사진 출처 : 허동현 교수와 함께하는 한국 현대사 산책 - 일본사 사진 자료실


 

Posted by 騎虎之勢
, |


[ 철학으로 세상보기 ]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기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려 했으나 10월로 연기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지난해 8월경 발간 예정이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전 수록 대상자인 장우성과 엄상섭의 후손들이 ‘친일인명사전 발행 및 게시금지가처분’ 신청을 한 것도 한몫을 했으리라. 그들의 가처분 신청은 올 2월 19일 모두 기각되었지만, 행여 또 다른 이유가 생겨 발간에 차질이 생기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사전을 발간한다고 해서 곧 친일 세력이 청산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작은 발걸음이나마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이번 일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가처분 신청을 하는 이의 숨은 심리는 무엇일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용서해주고 싶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궤변의 뿌리는 무엇인가?


 

근대정신의 이중성 - 계산적 합리성

 
  합리성(rationality), 이성(reason)은 근대(modern)를 열었던 핵심 정신이다. 이른바 ‘중세의 암흑기’도 이들 정신이 강조되면서 종말을 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근대가 우리에게 축복이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식민지를 침탈해 들어왔던 제국주의 세력의 주요 논리는 ‘너희를 근대화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근대화 논리를 앞세운 자들은 합리성 지상주의, 이성 만능주의를 우리 머릿속에 심어놓음으로써 근대정신의 이중성을 깨닫지 못하게 하였다. 

   따지고 보면 흔히 합리성이라 번역되는 rationality나 이성이라 번역되는 reason은 어원이 같다. 이 말들은 라틴어 라씨오ratio에서 온 것이며 라씨오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의 번역어이다. 그리고 로고스는 일반적으로 이성, 언어, 원리, 법칙 등으로 번역된다. 그렇지만 이들 번역어 중 어느 것도 정확한 번역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로고스라는 말은 그 의미가 풍부하다. 예를 들어 신약성경 「요한복음」에 있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구절은 원래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이다. 신약성경은 그리스어(헬라어)로 써졌기 때문이다. 로고스라는 말은 ‘언어’에 국한되지 않는, 그리스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일종의 ‘계산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라틴어 ratio는 단어 그대로가 영어로 되어 비(比), 비율(比率) 등의 뜻을 가진 ratio가 되기도 했고 rationality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편 라틴어 ratio는 불어 레종(raison)으로 번역되었고 레종은 영어 reason이 되었다. 그런데 근대를 이해하려면 그리스어 logos든 라틴어 ratio든 영어 rationality나 reason이든 ‘계산’(calculation)이라는 뜻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산의 기초는 더하기와 빼기이다. 곱하기는 같은 수를 계속 더하여 합하는 것이고 나누기는 어떤 수를 뺄 수 있을 때까지 빼는 것이다.

  사실 이성은 reason의 대표적인 번역어일 뿐이다. reason에는 이유, 추론 등의 뜻도 있다. 다시 말하면 ‘따지다’, ‘왜냐고 묻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분야를 발전시킨 것이 논리학(logic)이라 할 수 있는데, 어원은 역시 logos이다. 논리학이란 따지고 물으면서 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 거짓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빼고 참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더하여 합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reason을 추론이라는 의미로 보면 이것은 일반명사들의 연결 관계를 ‘계산하는 것’(더하기와 빼기)이기도 하다. 한편, ‘로고스의 시대’에 살았던 플라톤은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아카데메이아에 올 자격 없다’고 했는데, 기하학도 따지고 보면 선이나 도형, 각도, 비례 등을 더하기와 빼기에 기초해서 가르치는 셈이다.

  rationality 역시 ‘계산하는 능력’인 ratio에서 온 말이지만 reason과 굳이 구분하자면 reason의 결과가 합리성(rationality)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종의 계산 능력인 이성적 정신 능력을 잘 발휘하면 합리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합리성이란 ‘어떤 행위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최적의 수단이 되는가’를 가리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확실히 근대정신은 물질문명과 같은 것을 고도로 발전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여러 가지 편리함을 선사했다. 그러나 근대정신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만 기여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버마스는 근대적 이성이 지닌 도구적 측면을 비판하고 대화적 이성의 회복을 주장하는 것이고 푸코와 같은 철학자는 이성이 본래 억압적이라면서 반(反)이성의 길을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일제 식민지시대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그들이라고 친일을 선택하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을 안 했을까? 아마도 그들에게도 양심이란 것이 있었기에 내심 찝찝하기는 했을 것이다. 세상에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있겠는가. 스스로 자기를 인정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도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생각한 것이 ‘우리가 독립을 할 수 있을까?’이다.

  대표적 친일 시인 중 한 사람인 서정주는 ‘왜 친일 시를 썼습니까?’라는 질문에 ‘일본이 망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100년은 갈 줄 알았다’고 말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에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구별이 거의 없었고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운동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일제 말로 가면 갈수록 독립의 꿈을 포기한 채 일본 사람으로, 일본 사람보다 더 일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계산기를 두드려본 거다. 아무리 계산해보아도 ‘독립’이라는 답이 안 나오는 거다. 이럴 바에는 그냥 일본 사람으로 살자. 안 되는 건 하지 말자. 이것이 친일 행위를 했던 사람들의 1차적인 자기 정당화이다. 계산적 합리성, 계산적 이성이 작동한 결과다.

  이들에게 독립운동은 비합리적이다. 왜냐하면 들어가는 비용은 엄청 큰 데 반해 남는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험난한 길이지만 독립이 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들에게 독립운동은 완전히 ‘밑지는 장사’다. ‘더하기’는 없고 ‘빼기’만 있다. 그들에게는 친일이 ‘참’이고 독립운동이 ‘거짓’이다. 그들의 계산은 정확했다. 우리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이 독립기념일이 아니라 ‘광복절’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광복’ 이후 일본이 물러간 자리에는 미군이 들어왔고 이들과 결탁한 친일 세력은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이라 하지 독립기념일이라 하지 않는다. 우리는 독립기념관은 있지만 독립기념일은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독립운동 - ‘해야 하는 것’


  그런데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끝까지 독립운동을 했다. ‘깨지고’ 다치고 죽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끝까지 독립운동을 한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독립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이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다. 말하자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계산적 이성의 명령에 따른 합리적 삶이고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삶이다. 물론 ‘해야 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면 좋지만, 할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선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 아닐까?

  흔히 ethic을 윤리로, moral은 도덕으로 번역하는데, 이 두 개의 단어는 사실상 어원이 같은 셈이다. ethic은 성격, 습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ethos에서 온 말이고 moral은 로마의 키케로가 ethos의 형용사인 ethikos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인 moralis에서 기원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이든 윤리든 의미상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두 단어를 엄격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 다만 도덕(윤리)의 문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인데 이러한 판단을 하려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해야 하고’ 악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실은 윤리(도덕)적인 것도 그리 간단치는 않다. 다만 두 가지로 도식화한다면 (1)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행복(쾌)을 최대화하는 것’과 (2)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1)은 쾌락을 계산해보려고 했던 벤담의 공리주의에 기초한 윤리이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고통을 멀리하고 쾌를 최대화하려는 존재이므로 최대다수가 최대행복을 누리는 것이 최선이다. (2)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기초한 윤리이다. 칸트는 인간이 지켜야 할 보편법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선의지’가 있기에 그 법도 지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은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쾌를 가장 중시하는 이기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다른 인간을 목적으로 대할 수 있는 선의지를 가진 존재인가 하는 문제는 윤리학상의 난제이다. 다만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도덕적 판단의 문제와 관련해서보면 친일을 했던 사람들의 행태는 칸트의 윤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공리주의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안일과 영달을 위해 대다수의 우리 민족을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며, 소수가 다수의 행복(쾌)을 빼앗은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

 
  위에서 말한 계산적 합리성과 도덕성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물으면 거의 다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일제시대로 돌아가 보자. 도덕적 삶이란 나에게 희망사항일 뿐일지도 모른다. 독립이 요원한 마당에, 어쩌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맨땅에 헤딩’할 수 있겠는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끝까지 총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은 또 어떤가. 역사를 바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금도 나이 많은 어른들은 철도를 설치했느니, 공장을 지었느니 하면서 일본식 근대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들에게는 조선에 설치된 철도와 공장이 일본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한 것이란 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청산해야 할 역사가 너무나 많다. 일본에게 큰소리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친일세력들을 그대로 기용한 이승만, 독립군을 ‘무찌르던’ 만주군 장교출신 박정희, 박정희의 명을 받들어 베트남에서 더러운 전쟁을 펼쳤던 전두환과 노태우, 민주주의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 이들의 뿌리는 같다. 바로 친일세력이다. 문화재청장 이건무는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손자 아닌가.

  아마도 이들이 펼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논리는 친일을 정당화하면서 완성될 것이다. 오직 경쟁만이 살 길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고 경쟁에서 이기려면 힘을 길러라, ‘스펙’을 관리하라. 친일은 우리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힘을 길러야 독립도 하지 않겠는가. 결국 우리의 행위는 친일이 아니다. 애국이다, 애족이다. ‘가처분 신청’이니 ‘식민지 축복’이니 하는 자들의 궤변은 바로 이 지점에서도 나온다. 이러한 힘의 논리는 훨씬 세련돼 보이는 또 하나의 자기 정당화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우리가 독립을 하지 않고는 힘을 기를 수 없다는 것, 진정한 힘은 독립에서 나온다는 것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아니, 사실은 보이는데 자신들의 과거를 어떻게든 덮으려 하다 보니 위와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들의 궤변을 잠재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해야 하는 것’은 안 하는 ‘잔머리’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아픈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무산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계기로 다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 '사전' 발간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우리는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채 60년 이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騎虎之勢
, |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