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가 대상을 "인식"하는 원리에 관한 변(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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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본 것을 본 것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 말은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우리가 바라보는 데에 있어서, 단순히 보는 것, 즉 시각 그 이상의 과정이 덧붙여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 일련의 과정을 “지각(知覺)”이라고 명명한다.
지각은 감각 기관을 통해 어떠한 대상을 “알아서 깨닫는” 것이다. “알아서 깨닫는” 것.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思考) 체계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단지 보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물체의 상(像)이 망막에 맺히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보았던 대상에 대해 “안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을 때, 그 행위는 이미 시각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고, 그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은, 시각으로 본 “이것”이 “무엇”이라는 특정 개념으로 환원(還元)되는 작업을 의미한다. 시각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단지, “이것”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것뿐이다. 여기에서, 그 있는 것을 “무엇”이라고 대응하는 행위는 시각의 차원을 넘어선, 지각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무엇”은 우리의 사유(思惟) 행위를 통해 도출된다. 그리고 그 지각의 결과는 우리가 쓰는 일상 언어(言語)를 통해 표출된다.
만약 이것에 무엇을 대응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변의 사물 또는 현상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은 “알려고” 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서 우리는 “아는” 것이다. 단순한 시각의 산물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대상의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단지, 그 대상을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 대상을 “천착(穿鑿)”한다. 그럼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사유 활동을 통해, 우리는 그 대상을 비로소 “개념화(槪念化)”할 수 있다.
그 개념화된 대상은 우리 머릿속의 관념으로 자리 잡게 되고, 이로써 눈에 들어온 “이것”은 개념화된 “무엇”에 대응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보며,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그 대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이 대상을 “알려고 하는” 것이며, 이는 곧 우리가 행하는 지각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단순히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단지 시각의 범주 차원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시각은 수동적이다. 하지만, 지각은 능동적이다. 시각은 우리의 주변 대상들이 단지, 망막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 불과하지만, 지각은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 그 전달된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지각 주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떤 대상에 대해 “천착”하는 것. 이로써 지각의 과정이 진행될 수 있다. 보인 대상, 즉 “이것”을 개념화하고, 거기에 개념화된 “무엇”을 덧칠하고자 하는 작업. 이것이 곧 천착이며, 이는 우리가 지각을 행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要因)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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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졸고, 『지각의 시각화에서 시각의 지각화로』 中에서...
- KT&G 인문학 논문 공모전 수상작, by 서성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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