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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대중문화 騎虎之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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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호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3.09 블랙스완 : Happy Ending


백조의 호수의 본 내용을 모른 채 이 영화를 본다면 아마 모두들 원작을 암울한 배드엔딩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백조의 호수는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인 오데뜨가 결국 자살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왕자는 그녀가 아닌 그녀의 쌍둥이 동생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고, 결국 그 역시 그녀를 따라 자살을 하고 말죠.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그녀의 저주도 풀리고 악마의 성도 무너지고 맙니다.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난 두 연인은 영원한 행복의 나라를 향해 여행을 떠납니다. 결국 진정한 사랑이 행복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낸 겁니다.

 


 
전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장면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재구성하며 영화에 대한 제 나름의 감상을 정리하는 편입니다. 블륵스완에서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 장면이었습니다. 하나는 오프닝씬으로 니나의 꿈 장면입니다. 여기서 니나는 악마의 저주를 받는 오데뜨 연기를 하죠. 그리고 나머지 장면은 바로 마지막 씬으로 니나가 단장에게 완벽했어요 (“That was perfect.” 였는지 “ I was perfect.”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납니다만)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사실 완벽함은 니나는 물론이고 이 영화 전체에서 굉장히 주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수하고 가녀린 백조와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인 흑조를 같이 표현해야만 하는 발레 공연과 자신의 우상인 베스를 완벽한 발레리나라고 여기며 완벽함을 갈망하는 니나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아마도 여기서 이걸 물어야 할 겁니다.

 이 영화에서 완벽함이란 과연 무엇일까?

 

 
 원
백조의 호수를 본다면 완벽함은 사랑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가 진정한 사랑을 통해 악마의 저주를 풀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작의 한에서입니다. 블랙스완에서 주인공은 사랑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니, 사실 그녀가 진정으로 단장을 사랑했는지 역시 불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완벽함은 여성성의 획득일까요? 영화를 보고 인터넷 서핑을 하던 차에 성과 권력을 중심으로 이 영화를 해석한 글을 접했습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피를 초경의 상징으로 해석하며 남성의 권력과 초경을 통해 성적 대상이 되는 여자라는 주제로 쓰여진 감상평이었지요. 개인적으론 이런 식의 감상을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밑도 끝도 없이 부정하는 것도 아니구요. 다만, 이런 식의 해석은 한편으론 명쾌해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성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많은 부분을 배제하는 것 같다는 게 제 불만거리였습니다.

 
 백조에서 흑조로의 변화를 여린 소녀에서 성적 대상인 여자로의 변화만으로 볼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극에서 니나 어머니의 지나친 과잉 보호는 백조의 호수의 악마의 저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니나는 기술이 뛰어난 발레리나로 성장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녀는 주체적이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연약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2살짜리 여자애 방처럼 꾸며진 그녀의 방과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독립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는 상황만으로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죠.





 
 ‘백조의 호수의 캐스팅은 이러한 문제점을 그녀가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줍니다. 그녀는 흑조를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묻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릴리입니다. 그녀는 니나와는 대조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기술적으로는 거칠지만 그 거침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을 관능적이고도 자유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발레리나지요. 백조와 흑조를 다 표현해야 하는 무대를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 니나는 릴리를 질투하고, 동시에 그녀처럼 되기를 갈망하기 시작합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변화하려는 욕구를 품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런 그녀의 갈망은 약물을 섭취한 상태에서 릴리와 레즈행위를 하는 꿈을 꾸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릴리와의 육체적 사랑 행위가 결국 그녀 자신의 자위 행위였거나 혼자 꾼 꿈에 불과했다는 것이니까요.

 
 백조와 호수 공연 날, 맨 처음 백조 연기에서 그녀는 실수를 범합니다. 하지만 그 뒤 흑조의 연기에서 굉장히 훌륭한 연기를 펼치죠. 이렇게 봤을 때, 그녀는 더 이상 백조가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냐, 혹은 부정하는 것이 아니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할 것은 결국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가 연기하는 대상이 흑조가 아닌 백조라는 점입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마지막 공연씬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씬은 사실 한편으론 영화를 농도 깊게 축약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실수를 범한 백조 연기(특히 이 부분의 연기는 악마의 저주에 걸린 백조를 표현하는 부분이었음을 우린 유념해야 합니다)는 어머니로부터 계속 조종당하다시피 살았던 니나의 유약하고도 비정상적이었던 삶을 보여줍니다. 그 뒤의 성공적인 흑조 연기는 문제점을 인식한 니나가 자신의 자유성, 주체성을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갈등과 일련의 희생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자유를 모르고 살아왔던 수동적이었던 니나가 주체성을 찾기 위해선 그만큼 지금까지의 자신을 파괴하는 위험을 무릅써야만 했습니다. 스스로 자해하는 그녀의 행위는 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 흑조를 성공적으로 표현한 니나는 다시 자신의 대기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릴리로부터 인사를 받습니다. 자신이 죽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로부터 말입니다. 결국 니나는 자신이 아무도 죽이지 않았으며, 자해했다는 걸 깨닫습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파괴하면서 자유를 찾은 그녀는 그녀가 얻은 것과 잃은 것, 성취한 것과 성취를 위해 입어야만 했던 상처를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이겁니다. 그녀는 공연을 그만둘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겁니다. 그 어떤 관객도 그녀가 죽었다는 걸 확신할 수 없다는 겁니다. 마지막에 니나는 죽은 걸까요? 이 이야기는 정말 비극일까요? 부상을 회복한 니나가 다시금 백조의 호수를 연기한다고 생각하는 게 정녕 어불성설일까요? 엔딩씬에서 크레딧이 올라가면서도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려오는 그 엄청난 환호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백조의 호수만큼이나 해피엔딩입니다. 사랑의 완성으로서가 아니라 주체성의 획득이라는 차원에서 니나는 완벽성을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수동적이기만 했던 그녀가 주체성, 자유로움을 찾기 위해선 분명 크고 위험한 갈등과 위기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녀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감독은 이를 신경을 자극하는 놀라운 연출력을 통해 잘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자유를 얻는 과정에서 부단히 지금까지의 자신을 파괴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성취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얻은 것과 잃을 것을 목도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공연을 강행합니다. 무의식적 존재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백조로서 무대에 올라 연기합니다.

 
 결국 완벽했어요의 의미는 극중에서의 그녀가 겪어야만 했던 그 모든 갈등들이 단순한 정신질환적 모습이 아니었음을 말합니다. 그녀가 주체성을 획득하기 위해 겪어야만 했던 갈등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그 갈등 속에서 주체성을 얻었다는 걸 의미하죠. 그리고 물론, 이 주체성은 흑조만으로의 주체성도, 백조만으로의 주체성도 아닙니다. 이 둘을 합한 '니나'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주체성이지요.

 
 이런 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 원작인 백조의 호수만큼이나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포영화나, 신경을 자극하는 잔인성을 싫어하시는 분이시라면 비추입니다.
     반면, 파이트클럽이나 세븐 등과 같은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블랙스완 상세보기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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