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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대중문화 騎虎之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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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6 교원노조의 명단은 공개되어야 한다?




 

“공(公)적인 것”과 “사(私)적인 것”, 이 둘 중 어느 것에 더 무게를 두어야할까?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공적인 것에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한다고 답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적인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일단, “모두”를 위한 그 어떤 것이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대답의 자리를 대신한다. 사적인 것을 지닌 사적 개인들이 모두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가 바로 공적인 것일 테니까. 그러면, 그 어떤 것을 지향하는 모두는 바로 공적 개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두의 구성원들은 분명히 단순한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집합체 또한, 아닐 것이다. 무작위로 구성한 것과 다름없는 필부필부들이 어떻게 가치관의 공유를 "쉽게" 이루어 낼 수 있겠는가.

 

  미국의 정치철학자 롤즈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무지(無知)의 베일"이라는 사유실험을 통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공적 가치를 수립하는 과정을 논증해보였다. 사회 구성원들은 마치 무지의 베일에 가려진 것처럼 서로에 대한 정보에 무지하며, 그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정보는 선악 개념과 같은 일반 원칙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에 따른 두려움으로 인해,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들이 거머쥘 수 있는 최소한의 이익을 목표로 설정한다. 즉 공적 가치는 그러한 그들의 보수적인 선택에 기초하여 수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적 가치 수립과정의 중심에는 타인을 "의식하는" 각자의 행위가 존재한다. 각 개인이 궁극적으로 소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각기 타인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즉 나 자신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에 따른 결과가 과연 유리할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 것이다. 그래서 각 개인은 과감하게 유리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단지, 불리함을 피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이 모두가 “타인”이라는 존재에 의해 가능한 행동양식이다. 여기에서 상호성(相互性)이 성립된다. 그리고 합의의 공간이 비로소 열린다. 타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그들과의 충돌 보다는 소통이 더욱더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10조), 사생활의 자유(17조), 양심의 자유(19조) 등은 이러한 상호성의 특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각자 가지고 있던 타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서로를 인정하는 선에서의 타협을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즉 내가 자유를 얻고 싶으면, 타인의 자유 또한 인정해야 하고, 내가 존엄해지고 싶으면, 타인의 존엄성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개개인의 생각들이 합의를 통해 더욱 단단해졌고, 이를 명문화하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곧 헌법이다.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의 헌법 조항들이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증거물이 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려고 하는 행위가 타인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는 타인에 의해 마련된다. 교원노조의 명단을 공개하기를 원한다면, 교원노조 또한 그의 필요성을 공유할 때, 비로소 명단 공개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알 권리”라는 것을 내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알 권리는 나와 타인이 직접적으로 맺는 관계의 성격에 의해서 규정된다. 교원노조와 그 밖의 사람들 간에 직접적으로 맺는 관계의 근거는 그럼 무엇인가? 교육 활동, 바로 그것이다. 교원노조와 그 밖의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는 교사와 학부모, 혹은 교사와 학생, 이 이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즉 이 관계 내에서 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교육 활동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이는 서울남부지법이 “명단 공개는 학생의 학습권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그 경계를 분명히 지정하였다.

 

  교원노조의 명단 공개를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요 논거는 “공적인 것”의 존중과 “알 권리”였다. 하지만 상호성을 무시한 공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범위를 무시한 알 권리 또한 존재 가능하지 않다. 상호성에 근거하여 아래에서 위로 수립되는 공적 가치를 마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처럼 여기게 하는 그들. 그들에 있어서 “공공성”은 대체 어떠한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Posted by 騎虎之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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